“기술 환멸감”을 느끼는 사람들

AI 기술 발전은 우리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걸 목표로 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기술 환멸감”을 느끼는 사람들
Photo by Natalie / Unsplash
더러운 옷들이 스스로 세탁기에 걸어 들어가 물과 세제를 뒤집어쓰고, 세탁이 끝나면 다시 걸어 나와 건조대에 올라가지는 않아요.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AI 윤리 뉴스 브리프

2025년 3월 셋째주
by 🧑‍🎓민기

목차
1. 무엇을 위한 자동화일까, AI 양돈빌딩
2. “기술 환멸감”을 호소하는 사람들

1. 무엇을 위한 자동화일까, AI 양돈빌딩

  • 최근 충청남도는 AI가 사육, 도축 전 과정을 관리하는 대규모 빌딩식 양돈장을 운영하는 중국 기업과 협약을 맺었습니다. 이에 동물자유연대, 한국동물보호연합, 동물권행동 카라 등은 비판 성명을 내고 철회를 요구하였습니다. 빌딩식 밀집사육은 동물복지를 저하하고, 전염병에 취약해 항생제의 과도한 사용 등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입니다. 충청남도는 국내법상 양돈빌딩 건설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건설계획이 없고, AI 기술과 장비 등을 도입하기 위한 취지라는 입장입니다.
  • 문제가 된 양돈빌딩은 질병 감염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해 사람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동물의 관리를 AI가 대신한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필요한 노동인력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입니다. 그러나 AI를 이용한 자동화를 통해 축산의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사람이 적어진다면, 비인도적으로 불필요한 고통을 주더라도 감시하기 어려워지는 것이 아닐까요. 실제로 동물단체들은 중국이 동물학대에 대해 제대로 감시하지 않는 나라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외부로부터 차단된 AI 양돈빌딩이, 수익을 위해 동물학대를 방치하는 자본과 기술의 공모를 용이하게 만들지는 않을지 질문이 필요합니다.
  • ‘양질의 제품·서비스’를 값싸게 제공하기 위해서 노동과 착취를 감추는 일을 우리가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을까요. 얼마 전에는 “콜센터 직원의 인도 억양을 없애는 AI 솔루션”이 출시되어 논란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플랫폼노동이 노동자와 고객 사이에 “플랫폼”이라는 벽을 만든 것처럼, AI를 통한 자동화가 또 하나의 거대한 단절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2. “기술 환멸감”을 호소하는 사람들

  • 2018년 “소프트웨어 환멸감"이라는 도발적인 칼럼이 게시되었습니다. 필자는 현재의 컴퓨터 성능은 과거에 비해 훨씬 발전했는데, 소프트웨어는 그만큼 더 무겁고 느리고 불확실해졌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에게 더 적은 리소스로 더 빠르고 예측 가능하며 신뢰성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일종의 ‘장인정신’의 필요성을 제안했습니다. 현실적인 문제를 너무 단순화했다고 비판받기도 했지만, (현대의 프로그래머들이) 더 발전한 기술을 사용한다고 해서 더 큰 통제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글이기도 합니다.
  • “소프트웨어 환멸감”은 기술 전체에도 있을지 모릅니다. 기술이 발전했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삶에 대한 통제력은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산업화에 동반한 기후위기로 인해 우울마저 느끼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엄주'님의 트위터(현 X) 게시글.

  • 코완의 패러독스”는 역사학자 루스 슈왈츠 코완이 제시한 것으로, 발전된 기계가 보급됐지만 여성의 가사 노동 시간은 그대로거나 오히려 늘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가사노동이 쉬워졌다고 인식한만큼 더 많이 소비하면서, 결국 가사노동 필요가 줄어들지 않은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여성의 가사 노동 시간이 축소된 것은 결국 페미니즘 운동이 힘을 얻고 여성이 노동시장에 참여하게 된 시점이었습니다.
  • 이는 결국 AI 기술의 발전 역시 반드시 윤택한 삶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지난 2월 발간된 책 <AI블루>에서는 오히려 이런 AI기술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사람들을 피로하게 한다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쏟아지는 AI 뉴스들은 은근한 수위로 나를 분명히 협박하고 있었다. 앞으로 세상은 바뀔 것이며, 이 정보들은 변하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고, 이것들을 알지 못하면 반드시 도태되리라는 식으로.”
  • AI는 이제 갈수록 우리가 사는 물질세계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구글의 경우 12일 “제미나이 로보틱스”라는 이름의 로봇용 추론 모델을 공개하였습니다. AI와 로보틱스의 발전이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을 더 소비하고 더 많이 경쟁하게 만드는 경우는 없을까요? 기술을 거부하는 것만이 답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술이 과연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feedback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