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와 '함께', 공존 할 수 있을까요?

시장이 실패한 지점에서 탄생한 '리턴잇'의 사례를 보며 생각한 AI 산업

'빨리'와 '함께', 공존 할 수 있을까요?
출처: 연극 <프리마 파시> 보고 찍은 사진 (아직 안 보셨다면 강추드립니다!)
최대주의 쪽으로 과도하게 치우져친 현재의 담론 지형을 우리가 개입하고 질문하고 대항할 수 있는 가역적인 개입의 실천 공간으로 바꿔나가야 합니다. 최소주의가 무조건 옳기 때문이 아니라, 대항 담론 없는 담론 지형은 필시 그 배타성과 맹목성을 더해 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승일, <기술은 우리를 구원하지 않는다> p.65

'빨리'와 '함께', 공존 할 수 있을까요?

2025년 10월 1일
by 죠셉 💂🏻

배달 음식 자주 시켜 드시나요? 저는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해 먹기 귀찮거나 정말 시간이 없을 때, 그러니까 일주일에 한두 번꼴로 배달앱을 이용하는 편인데요. 언제부턴가 플라스틱 용기가 많이 나오는 종류의 음식을 피하게 됩니다. 환경 보호를 떠나 일단 분리수거도 번거롭고, 집도 어지러워지고 무엇보다 뜨거운 음식이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플라스틱을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영 찝찝하더라고요.

그러던 중 이번 주 우연히 알게 된 흥미로운 서비스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음식 배달앱에서 스테인리스 다회용기 주문을 가능하게 해주는 리턴잇 이라는 서비스인데요. 소비자가 다회용기 옵션이 있는 식당을 찾아 주문하면 다회용기로 식사를 제공하고, 이후 수거해 세척하는 중간 역할까지 해줍니다.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위 스크린샷은 쿠팡이츠 예시. 다른 플랫폼 주문 방법은 여기서 보실 수 있어요. (같은 페이지에서 서비스 이용 가능 지역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리턴잇은 서비스 이용료로 수익을 창출하지만, 환경부와의 협약을 통한 탄소 배출권 거래 수익금, 그리고 서울시, 인천시 등의 지자체로부터의 예산 지원을 받았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정부 지원 사업(내지는 협업사례)의 성격을 가진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시장 논리에만 맡겨두자니 플라스틱 용기의 과도한 사용이 발생하고, 일회용 쓰레기 및 처리 비용 증가, 환경파괴, 미세플라스틱 섭취 등 여러 부작용을 만드는데, 그렇다고 식당이나 플랫폼에서 다회용기를 제공하자니 수거와 세척에 따르는 비용뿐만 아니라 운영의 복잡도가 증가하죠. 그런 이유로 시장이 자체적으로는 해결하지 않는 문제를 민간 업체가 정부 단체와 힘을 합쳐 해결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시장이 실패하는 곳

AI 산업도 기업들이 주도하는 시장 논리에만 맡겨두면 다양한 부작용을 생산합니다. <AI 윤리 레터>가 지난 3년 남짓 다뤄온 수 많은 주제들이 그걸 보여주고 있죠. 지난주 제 주변에서 많이 공유됐던 필립 알스턴 전 UN 특별보고관의 인터뷰는 기업, 정부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사이 소외 되는 사람들이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오로지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하는 AI가 초래할 인권 문제를 경고했는데요.

“우버(Uber) 등의 플랫폼 기업은 신기술을 활용해 노동권을 없애고, 협상 능력을 없애고, 이전에는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수준으로 임금을 낮추고, 건강보험 등의 혜택을 없앴습니다. 저는 AI로 인한 가장 큰 위협이 (언론 등에서 강조하는) 일자리 소멸보다 근무 조건의 전반적인 악화라고 생각합니다.”

알스턴씨는 해결책으로 정부가 ‘챗봇의 영향력에 대한 인문학·심리학 등의 연구를 지원하는 방식’을 제안합니다. 하지만 ‘AI 경쟁력=국가 경쟁력’을 모토로 정부가 나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상황에서는 저런 연구의 지원은 우선순위가 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더구나 같은 인터뷰 기사에서 지적하듯 관계자 외에는 알고리즘에 접근할 수 없는 AI 산업의 특성상 리턴잇의 경우처럼 민간 업체의 개입을 통한 문제 해결 가능성도 적어 보입니다.

현재 이런 작업을 수행하고 있거나 대안적인 길을 열고 있는 프로젝트가 얼마나 있을까요? 물론 없지는 않습니다. AI 윤리 레터도 기업, 정부가 주도하는 담론의 장에 다른 물결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점에서 그중 하나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제 삶의 맥락에서 경험하고 생각한 AI를 더 많은 사람에게 가 닿을 수 있는 에세이의 형태로 써내는 작업 중에 있고요. 저 말고도 많은 분들의 연구나 저술 활동, 커뮤니티도 존재합니다. 이런 작은 물결들이 모여 언젠가 큰 파도를 일으킬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 모든 물결을 덮을 듯 거대한 변화의 해일이 저 반대편에서 밀려오고 있습니다. 마냥 희망하며 기다리기엔 누군가, 어디선가 더 큰 파도를 일으켜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AI 슈퍼스타 K?

그렇게 보면 AI 윤리와 관련된 지형도에서 IT 기업 산하의 사회공헌 재단들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기업과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긴 하지만 어쨌든 사회적 임팩트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고, 대기업 자본의 사회 환원을 목적으로 하기에 시민사회보다는 규모 있는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으니까요. 기업과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지난 몇 년간 (넓은 의미에서의 ‘AI 윤리’라는 가치를 염두에 둔) 다양한 프로젝트 중 제 기준 임팩트를 보여준 행사/이니셔티브는 재단에서 기획된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일례로 카카오임팩트의 ‘테크포임팩트’가 있습니다. AI에만 집중하는 사업은 아니지만, IT 전문가와 사회 혁신가, 대학 캠퍼스들 사이 연결고리 역할을 함으로써 긍정적 결과물을 만들어냈습니다. 가령 느린 학습자를 위한 LLM 기반의 번안 서비스처럼 시장에만 맡겨두면 나오기가 힘든 프로덕트. 혹은 거대 IT 기업 조직에 속해 엔드 유져와 멀리 떨어진 개발자들이 소셜 임팩트를 내는 현장에 직접 참여하며 느끼는 효능감의 창출은 수치화하긴 어려우나 유의미한 결과물이라 생각합니다. (AI 개발자들은 제가 뉴스레터에서 여러 번 다룬 AI 윤리의 ‘개인 층위’의 중요한 일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카카오임팩트와 카카오 창업자의 개인 사회공헌재단인 브라이언임팩트가 기획한 AI_Top_100에 대해서는 무척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은 공식 홈페이지의 소개 글 중 일부입니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누구나 AI를 통해 각자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세상,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엇인지, 새롭게 빛나기 시작한 사람들은 누구인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총상금 1억 5천만 원을 두고 100인의 참가자가 ‘각자의 기기와 AI 도구를 사용하는 개인전’을 치르는 일종의 ‘AI 슈퍼스타K’입니다. 선착순 3천 명 모집이 시작하자마자 마감되었다고 합니다. 아직 본격적으로 행사가 진행되기 전이지만, 이게 우리 사회에 어떤 ‘임팩트’를 창출하기를 기대해야 하는 건지 머리를 긁적이게 됩니다.

출처: https://aitop100.org/

실리콘 벨리의 효과적 가속주의 (effective accelrationism)을 연상케하는 행사의 슬로건, ‘미래를 가속하는 도전’은 더더욱 아쉽습니다. 정부와 기업의 주도로 ‘일단 가보자’라며 가속 페달을 힘껏 밟고 있는 지금, 사회 공헌 재단까지 나서 ‘가속’이라는 키워드를 가져와 개인에게 들이밀어야 할까요? 앞서 언급한 테크포임팩트 외에도 그간 다양한 재단들의 유의미한 시도가 많았음을 알기에 조심스러운 마음이지만 이 행사의 성공에 자극받아 행여나 비슷한 기획들이 나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책임지는 사람 없는 ‘대체 담론’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모두가 생존을 위한 각자도생의 길을 강요받는 지금, 진정한 의미의 ‘소셜 임팩트’는 일찍 기회의 문을 연 소수에 의해 가속하는 미래가 아니라, 그 주변부, 즉 한 사람이라도 더 챙겨 함께 가는 미래에 있는 게 아닐까요? 시장이 실패하는 그곳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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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채원 🥨)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 등 많은 실리콘밸리의 테크기업들도 ‘사회적 선을 위한 AI (AI for social good)’라는 이름 아래 많은 프로젝트들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시장이 실패하는 곳을 비롯해서, AI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대목을 발굴하고 자원을 투자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합니다. 동시에, AI가 어떤 곳에 쓰이는지에 관계 없이, 이러한 ‘긍정적인 예시’들에 주목함으로서 AI 기술 자체가 갖는 한계점(막대한 자원 소모 등)을 ‘덮어주는’ 결과를 낳는다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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