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을 위한 AI라는 명제

잠시 멈추고 숨을 돌리며 던지는 질문

공공을 위한 AI라는 명제
내가 어떤 것에 대해 아무리 열심히 쓰고 읽는다고 할지라도 그 글은 불가피하게 그들의 삶이 지닌 시간성을 소거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글을 넘어 나아간다. 글보다 더 길고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서. 글보다 오래 지속된다.
—김호경, 이하림, 한송희, <형언하는 몸>

공공을 위한 AI라는 명제

2025년 10월 15일
by 채원 🥨

AI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합니다. 어렵고 복잡한 인류의 문제를 해결해 줄 전지전능한 해결사로 바라보는 시각부터, 우리의 문제들을 전부 악화시키고 말 재앙으로 보는 시각까지. AI가 영향을 끼치는 영역이 사회 곳곳으로 늘어나고 나의 생활에 관여되는 지점이 늘어남에 따라, 점차 AI에 대한 개개인의 의견을 정의하는 것도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체로 AI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들로 한정해보겠습니다. 이 안에서도 다양한 입장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입장이 대립하는 지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 ‘사회적 선을 위한 AI (”AI for social good”)’ 분야입니다. 오늘은 다양한 비판적 관점 중, 특히 제 눈에 자주 띄는 두 가지 입장을 단순화해서 ‘근본주의자’와 ‘실용주의자’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나날이 복잡해지는 AI 비판 담론을 이해하고 구조화하는 데에 다른 분들께도 유용한 나침판이 되길 바랍니다.

구글의 https://ai.google/societal-impact/ 페이지 갈무리

‘근본주의자’들은 AI라는 기술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으므로, AI를 사용하는 것 자체에 비판적입니다. AI라는 기술이 만들어지는 데 들어가는 막대한 에너지, 그리고 이에 필요한 하드웨어를 만드는 데에 들어가는 희귀 광물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구조,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데에 고용되는 초저임금 노동, AI 기술이 악화시키는 불평등을 비롯하여 AI 기술 자체가 갖는 근원적인 특성들에 주목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공공을 위한 AI’라는 명제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정의롭지 않은 기술로 실현하는 공공선이라는 것 자체가 모순일 테니까요.

한편 ‘실용주의자’들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관계없이 AI는 이미 존재하고 널리 쓰이는 기술이므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AI를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AI 기술을 활용해서 민주주의, 기후 위기, 양극화, 차별의 문제 등을 해결할 새로운 방법들을 제안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선을 위한 AI’로 일컬어지는 많은 프로젝트가 이러한 실용주의적 관점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기록하는 ‘공공 이익 AI (https://publicinterest.ai)’ 라는 프로젝트도 살펴 볼만합니다.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공의 가치와 이익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어떠한 방법을 택해야 하는지, 다양한 관점들이 부딪히고 공존하며 함께 고민하는 것이 민주주의이고 다원주의니까요. 그러나 매일 쏟아지는 AI의 홍수에 휩쓸리다 보면,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AI라는 기술을 사용해서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 고민할 틈이 없는 것이죠. 모두가 한 번쯤은 숨을 돌리고, ‘공공을 위한 AI’라는 명제 자체에 의문을 던져보았으면 좋겠습니다. AI 윤리 레터 독자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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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운동의 전환을 위한 연속 정책 집담회 “REBOOT”: “(문화예술 분야)AI 정책의 현재와 문제점” (2025-10-16 오후 7시, 온라인 줌. 신청 서식)
주최: 문화연대, 문화사회연구소 / 발제: 이광석, 토론: 김서정, 오병일, 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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