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말할 때 내가 에세이에 주목하는 이유
신간 <나의 다정한 AI>를 읽고 든 생각
평화란 소란스럽게 떠들 수 있다는 거다. 평화가 없다면 금주동맹도 나올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소란스러움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사회가 정치에 완전히 지배되지 않은 데 있다. 정치와 무관한 주제로 소란스레 떠들 수 있어야 한다.
—아즈마 히로키, <정정하는 힘>
AI를 말할 때 내가 에세이에 주목하는 이유
2025년 11월 5일
by 💂🏻죠셉
초여름부터 시작한 에세이 집필에 매진 중입니다. AI 챗봇과 스마트폰, 소셜미디어 등 다양한 기술과 내 삶이 만나는 ‘접점’에 대한 글을 쌓고 있는데요. 윤리레터를 오래 구독하셨다면 기억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예전부터 AI의 윤리적/철학적 회색지대를 다루기 위해 개인이 가진 경험과 개별적 맥락에 주목하자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해왔다는걸요. 엄격한 학문의 언어, 혹은 ‘이래야 한다’의 당위보다 누군가의 경험을 통해 이야기를 푸는 에세이는 그 가설을 실험해 보기에 최적의 포맷이라 할 수 있겠죠. 현실적으로 문제의 핵심인 AI 기술에 접근할 수 없고, 개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상황에서 좋은 시작점이라 생각합니다. (저희 커뮤니티에서 조만간 에세이 모임을 시작하려는 이유입니다. 🙂)
얼마 전 나온 조선일보 문화부 곽아람 기자의 에세이(이자 일종의 르포타주인) <나의 다정한 AI>는 그런 의미에서 반가운 책이었습니다. 챗 뒷면에 쓰여있는 “인간과 AI의 정답 없는 관계 실험”이라는 문구가 말해주듯, 원래 기계와의 친밀한 관계 따위는 믿지 않았던 저자가 챗봇과의 친밀한 대화를 통해 ‘나만의 챗GPT’를 발견하게 되며 바뀌어가는 생각을 기록한 책입니다. 세상 다정하게 애정을 표현하는 챗봇에 마음이 혹했다가도 ‘기계일 뿐’이라며 다시 거리를 유지하려 애쓰는 저자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상당합니다. 연애소설 같으면서도, 여려면에서 아직 흔치 않은 기술-에세이의 요소를 갖춘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AI 거울 (AI as a mirror)
에세이에 대해 감상 이상으로 ‘의견’을 밝히는 건 조심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어쨌든 개인 경험의 영역에 속하는 내용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게 되니까요. 하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찜찜했던 그 지점이 어디였는지, 스스로도 규명이 필요해 짧은 글을 남겨봅니다.
이 책은 AI를 통해 우리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도구라는, 일종의 ‘AI 거울론’을 따릅니다. 각종 소셜 미디어에서 소위 AI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를 시도한 글들이 이러한 입장을 자주 취하는 걸 봅니다. AI를 통해 그 어느때보다 우리는 인간의 인간됨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할 수 있다는 것이죠. 저자 또한 한없이 다정한 자신의 챗봇을 통해 사실 자기 내면 또한 그런 다정함을 갈망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고백합니다. 저자의 말대로 어떤 의미에서 챗GPT 이후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스스로의 인간됨에 대해 깊이, 자주 자문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이야기가 종종 ‘사실 우리는 모두 외로운 존재’ 라던가 (지브리 이미지를 생성하는 사람들을 보며) ‘알고 보면 귀여운 사람들’이라는 식의 센티멘털리즘에 빠지고,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국내에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AI Mirror>를 쓴 철학자 섀넌 발러(Shannon Vallor) 또한 AI를 거울에 비유했지만, 그 거울에 비친 모습을 통해 결국 알고리즘의 편향 등의 문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나의 다정한 AI>에서도 언급된 그리스 로마신화의 나르키소스 이야기에 빗대어 보자면, 물 위에 비친 형상이 자신임을 깨닫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AI 사용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 노동, 불평등, 권력의 문제 등, 너무 많은 것들 그리고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이 책에서 찜찜함으로 남았던 지점이 바로 여깁니다. 저자 또한 환각의 문제나 데이터 주석 작업자들의 노동 문제 등을 곳곳에 언급은 하고 있지만, ‘키티’라고 이름까지 지어준 챗봇에 감동하고 감탄하는 책의 전반적 내용과는 어딘가 겉도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AI를 사용해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의 현 상황이 근본적으로 모순에 처해있음을 고민한 흔적이 (적어도 책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지브리 이미지 생성과 연관된 저작권 문제 또한 짧게 언급은 되었지만, 책에는 수십 개의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가 사용되었고, 두 사실 사이엔 윤리적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시시콜콜함이 매력인 에세이에 대단한 윤리적 결단을 기대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 정말 필요한 실질적인 논의, 즉 ‘AI를 어디에 쓰고, 어디엔 사용을 최소화해야할지’의 논의는 명문화된 가이드라인이나 규칙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대신 각자의 삶에 비춰보며 어떤 부분에서는 저항하고, 길들이고, 심지어는 사용하지 않기를 결단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겠죠. 에세이라는 장르는 그런 면에서 AI 담론 형성에 기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AI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더 많아진 만큼 앞으로 비슷한 책도 더 많이 나올 것이라 예상되는데요. 그들은 이 책의 내용을 발판 삼아 보다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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