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보이는 게 네게는 보이지 않는다면

스마트안경이 바꿀 관계에 대한 생각

내게 보이는 게 네게는 보이지 않는다면
(...) 나는 우리의 기억이 어쩌면 비상 대피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곳은 우리가 알고 있는 공동의 장소,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볼 수 있는 장소, 우리가 공유하는 장소, 그리고 힘들 때 찾아가는 장소인 것이다.
- 폴커 키츠 (윤진희 역), <당신에게 끝까지 다정하기로 했다>

스마트안경은 우리가 연결되는 방식을 어떻게 바꿀까

by. 🥨채원

올봄에 출장으로 뉴욕에 다녀왔습니다. 많은 것이 인상 깊었지만, 그 중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지하철과 길에서 손쉽게 눈에 띄던 데이팅 앱 광고와 메타의 스마트안경, 레이밴 디스플레이 광고였습니다. 2025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외롭고, 연결되고 싶어 하고, 누군가 만나고 싶어 하는구나, 싶으면서도 ‘어떻게’ 누군가를 만나는가 하는 가는 분명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마트안경, AR/VR 기기, 메타버스... 모두 한 철 지난 버즈워드로 여겨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 메타가 출시한 ‘레이밴 디스플레이’가 작년에 100만 대 이상 팔리는 등 시장에서 비교적 성공을 거두는 것을 보면 이번에는 진짜로 사람들이 스마트안경을 쓰기로 한 걸까 싶습니다. 메타에 이어서 애플, 알리바바, 삼성, 아마존 등 많은 테크 기업들에서 스마트안경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 같습니다. 일례로 아마존의 택배기사용 스마트안경은 배송지를 알려주고, 택배를 탐색하고, 배송 완료한 택배의 사진을 찍어주는 등의 기능을 갖추었다고 합니다.

안경을 쓰고 길거리를 걷기만 해도 수많은 정보가 실시간으로 말 그대로 눈앞에 쏟아지는, 공상과학 영화에서 보던 미래가 현실이 되는 걸까요. 일반 안경과 구분되지 않는 스마트 안경이 주는 함의는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생활 보호의 문제입니다. 구글은 2012년 구글 글라스를 발표해서 시장에 내놓았지만 10년 후 단종하며 실패로 막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실패의 원인이 기술적인 한계가 아니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사생활 보호 문제를 간과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 문제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레이밴 디스플레이의 경우 촬영 중 LED를 켜서 (많은 랩탑들이 비슷한 방식을 취하고 있죠) 상대방에게 녹화되고 있음을 알려주도록 설계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치는 비교적 쉽게 해제될 수 있다는 것이 404 미디어의 취재에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메타의 스마트 안경을 활용하여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개인 정보를 손쉽게 화면에 띄워주는 시스템을 만든 대학생들의 영상이 작년에 바이럴되기도 했었고요. (그리고 흥미롭게도 영상 속 주인공인 두 하버드 대학교 학생들은 학교를 중퇴하고 스마트 안경 스타트업을 창업했습니다) 그럼 구글 글라스 때와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요? (그저 못생김의 문제였던 것일까요… 괜히 구글과 메타 등 테크 기업들이 패션 브랜드들과 협업하여 스마트 안경을 개발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거겠죠.) 10년 전에는 시장이 거부했던 기술이 다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제가 진짜 궁금한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Image Credits:Meta (출처: 테크 크런치 기사)

다시 처음에 언급했던 데이팅 앱과 스마트 안경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상용화되면서 우리의 일상을 바꾼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가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에 비해 오늘 우리가 타인을 만나는 방식은 이미 많이 달라졌습니다. 저만해도 스마트폰 메신저나 소셜 미디어 없이는 연결될 수 없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스마트안경은 또 무엇을 어떻게 바꿀까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녹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나의 말과 행동이 달라질 것입니다. 한발 더 나아가, 나와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소셜 미디어 피드가 전혀 다르듯, 같은 장소에 있더라도 전혀 다른 현실을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같은 장소에 있더라도 스마트안경 위 덧대어지는 광고와 추천은 개개인에게 맞춤으로 제공될 테니까요. 그렇다면 내가 인지하는 세계와 타인이 인지하는 세계가 달라질 때, 우리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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