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모든 AI 기술은 '피지컬' 하기에
피지컬 AI 시대, 피할 수 없다고요?
그러나 “내 몸은 나의 것”이 아니라 “내 몸이 바로 나”다.
—정희진,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원래 모든 AI 기술은 '피지컬' 하기에
by 🧑🎓민기
‘피지컬’이 무슨 뜻일까요? ‘이 선수는 피지컬이 뛰어나다’, ‘피지컬 차이’ 등등. 언제부터인가 ‘신체조건’이라는 의미로 ‘피지컬’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유행이 되었죠. 반대급부로 지적 능력의 차이를 말하기 위해 ‘뇌지컬’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고요. 이렇게 ‘피지컬(physical)’이라는 단어에는 ‘신체적인’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물리적인’, ‘물질적인’이라는 뜻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이 ‘피지컬’이라는 어휘를 (진지한 의미로) 유행시키고 있는 곳 중 하나가 엔비디아입니다. 1년 전 2025년 1월 CES에서 나선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다음은 ‘피지컬(physical) AI’의 시대가 될 것”이라며 단언했습니다. LLM이 텍스트 데이터를 입력으로 인간의 언어 능력을 모방했듯이, ‘피지컬 AI’는 주변 환경에 대한 데이터를 입력으로 인간의 물리적 작업 능력을 모방하는 걸 목표로 합니다. AI 기술의 상용화에 이어, 인간과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 자율주행 자동차, 자율주행 로봇 등의 산업이 AI 산업과 결합해 성장할 것이라 예측한 것이죠. 이러한 기대가 과연 얼마나 현실로 드러났는지에 대해 AI 윤리레터에서 하나씩 짚은 적도 있습니다. (2025-11-12 AI 하이프 예방 주사: 피지컬 AI)
그 선언으로부터 1년 후, 대기업들은 앞다투어 로보틱스 기술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작년 11월 젠슨 황 CEO의 방한 직후 삼성, SK, 현대자동차, 네이버는 엔비디아가 제공한 GPU와 플랫폼을 통해 ‘피지컬 AI 팩토리’라고 불리는 AI 데이터센터를 세울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2025-11-03 엔비디아발 AI 세계질서에 탑승한 한국) 정부 역시 ‘피지컬 AI’ 도입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정부는 2026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며 “피지컬 AI 선도국가”를 선언했고, 대통령 직속의 국가AI전략위원회는 “2030년 피지컬AI 세계 1위”를 당당히 국가 목표로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노사합의 없이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로봇을 도입해서는 안 된다’라고 밝힌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의 문건은 이 흐름에 대한 우려를 선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회의에서 언급하면서 더욱 화제가 되기도 하였는데요. 이는 결국 ‘피지컬 AI’가 광범위한 노동의 자동화를 뜻하고, 이에 대한 하이프가 일자리 축소를 가속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로봇이 사람을 대체한다’라고 말할 때 과연 대체되는 것이 사람의 노동인지, 사람의 일자리인지 명확히 짚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AI콜 도입을 이유로 오랫동안 일해온 콜센터 상담인력을 감축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자동화가 노동자의 자리를 대체하는 것과 실제로 노동자의 작업 능력을 대체할 수 있는지는 아주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2024-01-15 콜센터 AI 도입과 상담 인력 감축)
실제로 현대자동차가 자랑하는 자동화의 거점인 조지아주 스마트팩토리에서도 생산 가능한 차종이 아직 2개 뿐이라는 것은 가려지기 쉬운 사실입니다. 자동차의 구동방식에 따라 부품 개수가 약 3만 개에서 약 1만 8900개까지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조지아주 스마트팩토리에서 생산할 수 있는 차종은 대체로 부품 수가 적은 전기차입니다. (현대자동차 전체 매출 대수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율은 겨우 6.7%입니다.)
이 두 사례는 공통적으로 기업이 자동화를 선택하는 것은 실제로 자동화 기술이 인간의 노동 결과물을 대신할 수 있을 만큼 성숙했는지와는 별개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대체’라는 표현이 그 선택의 책임을 가리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로봇이 스스로 주어가 되어 인간을 대체하기로 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노동자 없는 생산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로 로봇을 도입해야 할 정도로 한국은 자동화율이 낮은 곳일까요? 이미 한국의 자동화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국제로봇연맹은 보고서를 통해 한국에 노동인구 대비 로봇 비율이 세계 1위라고 발표했습니다. 1만 명 당 1012대 꼴인데요, 이는 2위인 싱가포르(770대)를 뛰어넘고, 중국(470대), 독일(429대), 일본(419대)의 두 배가 넘는 수치입니다.

갈등을 조율해야 할 정부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정부는 지난해 8월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면 생산성은 최대 3.2% 오를 것’이라는 한국은행 보고서를 인용해 ‘AI 대전환은 우리 경제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된 점은, 보고서에서 응답자가 직접 답변한 업무시간 변화를 기반으로 생산성을 추정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개인의 생산성이 향상되었는지는 더욱 면밀한 조사가 필요합니다. 개인이 아닌 직장의 범위로 보면, AI로 생성된 저품질 업무 결과물인 ‘워크슬롭(Workslop)’을 경험하는 직장인이 늘어나고 있기도 합니다. (2025-10-13 AI가 만들면, 인간이 다시 고치는 현실)
생산성 향상을 낙관하기에는 또 하나의 난관이 있습니다. 바로 대부분의 고용을 담당하는 중소기업의 AI 역량 격차입니다. OECD와 한국노동연구원이 공동 발간한 <Artificial Intelligence and the Labour Market in Korea> 보고서에는 ‘한국 인구 대부분의 고용을 감당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AI 도입율이 대기업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는 분석이 담겼습니다. 또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발간한 <인공지능과 노동> 보고서에는 ‘지방·중소도시·중소기업 노동자는 AI 전환 재교육·전직지원 기회 측면에서 사각지대에 있다’라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즉 AI/로봇 도입으로 인한 충격은 더욱 불평등하게 일어날 것이라는 점입니다. 대기업의 생산성은 향상되고, 중소기업의 생산성은 뒤처진다면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가 생겨나기보다 중소기업이 해결하던 수요를 대기업이 자동화 공정으로 흡수하는 인력이 작용하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 엔비디아의 마케팅 용어 같던 ‘피지컬 AI’는 명실상부 세간의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마치 새로운 경쟁상대가 나타난 것처럼 일하는 사람들을 출혈경쟁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보려 합니다. ‘피지컬’이 무슨 뜻일까요? 반대로, ‘피지컬’한 AI가 새롭게 등장했다는 말은 과연 과거에는 ‘피지컬하지 않은’ AI만 있었다는 뜻일까요? 의식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사람의 판단을 모방하는 로봇 기술은 과거부터 계속 존재해 왔습니다. 오히려 응답 속도, 전력 효율성, 예측 가능성 측면에서는 기존의 로보틱스 기술이 더 우월할 수도 있습니다. 단지 인공신경망을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죠.
마치 가상세계에서 튀어나와 현실세계에 강림한 것 같은 조어인 ‘피지컬 AI’이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AI 기술에 쓰이는 막대한 현실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의 학습을 위해 감시당하며 반복적으로 고된 육체 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옵티머스 트레이너들의 ‘피지컬’ 데이터 노동. 피지컬 AI를 실현시킬 AI 팩토리 운용을 위해 필요한 전력과 냉각수. ‘피지컬 AI’의 쟁점은 현실에 존재하는 다른 AI 기술의 쟁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너무 쉽게 기술을 가능케 하는 물리적 조건들을 무시해 왔을 뿐, 원래 모든 AI 기술은 ‘피지컬’하다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도 ‘피지컬 AI’가 미답의 영역인 것처럼 강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AI 하이프를 통해 막대한 투자와 수입을 얻어낸 테크 기업에게, “새로운 기회의 땅이 열렸다”는 믿음을 퍼뜨리는 건 AI 하이프를 다시 불지필 수 있는 매력적인 선택지입니다. 세계 최고의 AI를 개발하지 못했어도 아직 패자부활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AI 군비 경쟁 구도는 이곳에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피지컬 AI 선도국가’ 실현을 위해 향후 5년간 6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기후대응기금 전체 액수는 2조 3천억 원입니다.) 반면 노동부의 역할에 대해, 지난 12월 국가AI전략위가 발표한 대한민국 인공지능 행동계획(안)에는 “노동부는 인간과 AI가 협업하는 고용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권고가 담겼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피지컬 AI’가 그 '피지컬'한 대가를 감당할 만큼 가치있어 보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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