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힘이 있으면 뭐든 해버리는 게 인간이라서

월터 미티의 뷰파인더를 통해 보는 기술적 시민성

할 수 있는 힘이 있으면 뭐든 해버리는 게 인간이라서
출처: 직접 찍은 사진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 중

할 수 있는 힘이 있으면 뭐든 해버리는 게 인간이라서

by 💂죠셉

십 년 넘게 저의 페이스북 계정 담벼락 사진은 영화 <월터 미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한 장면입니다.

왼쪽이 월터(벤 스틸러), 오른쪽이 숀(숀 펜)입니다. 출처: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이 장면을 설명해 드리자면, 영화의 주인공인 월터는 어떤 연유로 유명 사진작가인 숀에게 급하게 물어봐야 하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문제는 희귀 야생 동물 사진으로 유명한 숀이 ‘유령 표범’이라는 희귀 동물을 촬영하기 위해 히말라야 어딘가에서 야영 중이어서 연락도 안 되고 언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거죠. 할 수 없이 월터는 숀을 찾아 히말라야 산을 오르고, 산 정상에서 둘은 조우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흥미로운 장면이 나옵니다. 둘이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그때, 몇 주, 어쩌면 몇 달을 기다린 그 순간이 찾아온 거죠. 숀의 뷰파인더에 유령 표범이 등장한 겁니다. 숀은 아이처럼 신이 나 월터를 뷰파인더로 초청하더니, 그 이후 셔터 버튼을 누르지 않은 채 한참 동안 저 멀리 표범을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월터: 언제 찍을 거에요..?

숀: (잠시 뷰파인더에서 눈을 뗀 후 한참 있다가) 가끔은 안 찍어. 어떤 순간이 좋으면, 개인적으론 말이야, 카메라의 산만함을 원하지 않을 때가 있어… 내가 그 순간에 머물 수 있도록.

월터: 순간에.. 머물러..?

숀: 그래, 바로 거기, 여기에… 어, (표범이 떠난 걸 보고) 갔다. 갔어…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 관심 경제 등 키워드로 대표되는 산만함의 시대에 “현재에 온전히 머물라”는 만트라를 위해 종종 소환되는 장면이기도 하지만,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또 다른 지점은 바로 숀과 카메라의 관계입니다. 이 영화를 처음 본 대부분 사람의 생각은 아마 비슷할 것 같습니다. “아니, 담요 뒤집어쓰고 몇 주, 어쩌면 몇 달을 기다린 순간인데 왜 안 눌러? 셔터 누르는 데 얼마나 걸린다고? 어서 찍고 나서 감상하면 되는 거 아니야? 저걸 찍어가서 팔면 돈이 얼마인데!”

솔직히 말해 저라도 일단 찍고 감상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너무 드라마틱한 예시일지도요. 하지만 중요한 건 위 장면에서 숀이 손가락만 까딱하면 찍을 수 있는 사진을 찍지 않기로 능동적으로 선택했다는 데 있습니다. 기술이 나의 삶을 앞서가지 않고,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 기술을 어디까지 쓸지를 정한 겁니다. (이 경우 근접거리에서는 표범을 찾을 수 없어서 뷰파인더라는 기술을 통해 표범을 발견하기까지만 카메라를 썼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최근 인상적으로 읽은 한 칼럼에서 철학자 피아 로리첸 (Pia Lauritzen)은 우리가 인공지능을 설명하며 사용하는 가장 흔한 세 가지 비유 - 도구(tool), 증폭기(amplifier), 거울(mirror) -가 놓치고 있는 점을 지적합니다.

“세 가지 비유 모두 인공지능을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는 점에서 실수를 범하고 있다 (도구의 경우 더 나은 퍼포먼스, 증폭기와 거울의 경우 다른 나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더 나은 이해를 가능케 해준다는 믿음.) 문제는 이런 기술 비유(tech metaphors)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성장하는지, 궁극적으로 누구인지’를 질문하는 한 인간 대신 스스로를 그저 한 명의 ‘테크 유져’로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즉,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주변 환경 속에 그저 서 있는 사람일 뿐, 그 환경의 일부로서 미래에 대한 책임을 함께 공유하고 있음은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가 말했듯, 이런 비유는 우리를 기술을 쓰는 것이 안 쓰는 것보다 언제나 낫다는 기본 편향(default bias)에 취약하게 만든다.”
예전 뉴스레터에서 짧게 소개했던 만화 <고깔모자의 아틀리에>의 한 장면. 출처: 소장 중인 작품

며칠 전, 예전 독서 모임을 함께 했던 회원분이 몇 년 만에 단톡방에 책 출간 소식을 전했습니다. ‘요즘 책 쓸 때 AI가 필수’라며 한 달여 만에 끝냈다고 하시는데, 자괴감이 들더군요. 저도 이번 여름 탈고를 목적으로 책 한 권을 집필 중인데, 몇 달째 원고가 안 쌓여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거든요.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습니다.’라고 한마디 해야 제 기분이 좀 나아질 것 같았어요.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글쓰기가 원래부터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겠구나. 나는 그 과정에 정신의 성숙이니 뭐니 하는 의미를 부여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원래부터 자동화됐으면 좋을 무언가. 단지 그뿐이었겠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나와는 다르게 수학 공식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시간 가는지를 모르거나 혹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깊이 경탄하는 법을 아는 사람일지도 모르지. 혹은 오늘 소개해 드린 영화의 숀처럼 카메라 속 뷰파인더에서 잠시 머무는 시간을 만끽하고 싶어 셔터를 누르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카메라라는 기술을 통해 나에게 이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힘이 주어져있지만, 셔터 소리로 방해받기 싫을 정도로 아름다운 이 순간을 온전히 머뭄으로서 자기 삶이 더 풍성해질 것이라 믿는 사람 말입니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시대엔 삶의 많은 영역이 자동화되어 통계적 평균에 수렴해 갑니다. 생산성과 편의를 위해 기술을 아예 포기할 수는 없다고 해도, 그저 ‘거기 있으니’ 사용하기보다는 소신껏 내 삶에 기술을 맞추며 사는 영역 하나쯤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얼마 전 출장을 나갔다가 귀국하는 아내를 어떻게 하면 가장 환영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영상을 찍는 대신 멀리서 사진만 찍고, 스마트폰을 내려놨던 게 기억납니다. 각자의 삶의 맥락에 따라, 천 개의 삶에는 천 개의 카메라와 표범이 있겠죠. 여러분의 이야기가 진심으로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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