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치킨게임”
젠슨 황 '치맥회동'과 GPU 26만 장, APEC에 가려진 것
능력주의는 한국사회의 가장 강력한 경제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재벌들을 논외로 하고, 피고용자인 '을'들 사이의 공정에 관한 논의로 기울었다.
— 신광영, “세습 계급 사회”, <문화과학 (계간) : 123호 가을 [2025년] ― AI 세계질서>, 225p.
AI 윤리 뉴스 브리프
2025년 11월 첫째 주
by 🧑🎓민기
목차
1. 닭을 튀겨 먹으며 엔비디아 ‘AI 협력’ 과시한 재벌들
2. 엔비디아발 AI 세계질서에 탑승한 한국
1. 닭을 튀겨 먹으며 엔비디아 ‘AI 협력’ 과시한 재벌들
2. 엔비디아발 AI 세계질서에 탑승한 한국
1. 닭을 튀겨 먹으며 엔비디아 ‘AI 협력’ 과시한 재벌들
- 지난 목요일(30일) 저녁, 저의 뉴스피드는 엔비디아(NVIDIA) 회장인 젠슨 황(Jensen Huang)의 방한 소식으로 가득했습니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만난 ‘치맥 회동’이 크게 이슈가 되었죠. 여론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팔짱을 끼고 맥주를 마시는 ‘러브샷’ 사진과, 심지어 어떤 메뉴를 시켰는지의 얘기까지 신문 지면을 덮었습니다. 가게 밖에는 일반 시민들도 모여들었고, 젠슨 황 회장은 이들을 만나 사인 등 ‘팬서비스’를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 시민들과의 질의응답에서 엔비디아 투자자들을 향해 “이게 바로 한국이 부자인 이유군요(That’s why Korea is so rich)”라고도 말했습니다. 세 사람은 그 후 게임용 GPU ‘지포스’ 기념 행사에 참석해 3사의 친분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젠슨 황 회장은 “페이커”(리그오브레전드 프로게이머 이상혁 선수의 닉네임)를 연호하고, 정의선 회장은 자신과 아들의 게임 경험을 얘기하며 공감대를 만들기도 했죠. 다음날 젠슨 황 회장을 만난 이재명 대통령까지 “치킨 드시는 것도 온 국민이 함께 지켜봤다”며 관심을 드러냈습니다.
- 세 사람이 이렇게까지 친분을 강조한 이유는 AI를 중심으로 한 협력을 홍보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 흔한 기자회견이나 공개회의가 아니라, ‘치맥 회동’, ‘게이밍 장비 행사 참석’이라는 방식을 택하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다는 사실에 주목해 봅니다. 31일 삼성전자와 현대차 주가가 상승했고, 세 사람이 만난 상호인 ‘깐부치킨’의 1호점에는 주문이 폭주하기도 했습니다. 3사의 ‘AI 협력’ 홍보는 막대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 있겠죠.
- 이 날 세 사람의 모습은 경영인보다는 인플루언서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접했던 경영인들은 기업에 관심을 모으기 위해 얼마나 많은 매출과 일자리를 만들어 낼 것인지 연설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날 세 회장은 반대로 치킨과 맥주를 먹고 게임을 하는 자신들의 소비가 평범한 사람들과 얼마나 많이 닮아 있는지 강조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상품을 소비해 주었고, 또 얼마나 많이 자사 주식에 투자해 주었는지 강조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른 무엇도 아닌 닭고기 소비와 주식 투자를 통하여 세 회장의 회동에 반응하였습니다. 몇몇 경제지에서는 이를 ‘신선한 충격’, ‘시장을 존중하는 겸손함’(서울경제), ‘소박하지만 진리를 담은 행복론’, ‘친근감’(한국경제) 등으로 표현하며 칭찬했습니다.
-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세 회장이 공감대를 만들고 ‘깐부’(절친한 친구)가 된 것처럼, 이들을 동경하는 시민들도 회장들과 공감대를 나누고 ‘깐부’가 될 수 있을까요?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이들의 삶의 궤적은 평범한 서민과 매우 다릅니다. 식사 자리에서 이재용 회장은 “치맥을 먹어 본 게 10년쯤 된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이재용 회장은 경영 승계를 위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서민들의 노후 생계 수단인 국민연금 재원에 큰 피해를 남긴 중심인물이기도 합니다. 재벌 3세인 정의선 회장 역시 경영 승계 논란의 씨앗을 안고 있습니다. 또 젠슨 황 회장의 두 자녀는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례적으로 아버지의 기업인 엔비디아에 취업해 화제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육식과 ‘러브샷’을 통해 우애를 다지고 게이밍 행사에 참석하는 행보가 우연이든 고의든 전형적인 남초 문화를 보여준다는 점도 짚어야 하겠습니다. 이들의 삶과 행적은 평범한 시민들과 전혀 다르고, 때로 대척점에 있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소비를 하고 있다’, ‘이 기업 제품을 소비하고 있다’, 그리고 특히 ‘이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는 공통의 경험은 일종의 소비자 정체성을 만들어내고, 마치 이들 경영인들이 평범한 사람들과 운명공동체인 듯한 착시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날의 ‘치맥 회동’이 보여준 것은 ‘AI 협력’까지도 단순한 산업 전략을 넘어서 평범한 사람들이 소비할 수 있는 상품이 되어 사람들의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AI 산업의 향방을 결정지을 기업인들과 시민들 사이에 소비와 투자를 매개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관계가 태어나고 있습니다.
2. 엔비디아발 AI 세계질서에 탑승한 한국
- 위의 소식에 이어 다음날인 31일, 이재명 대통령이 APEC 정상회의장에서 국내 대기업 회장들과 함께 젠슨 황 회장을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엔비디아는 정부와 국내 4개 기업(삼성전자 · SK그룹 · 현대차그룹 · 네이버클라우드)과 함께 최신 GPU 총 26만 장 규모의 AI 인프라 계획에 협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금까지 기업들은 전세계적 품귀현상을 겪고 있는 최신 엔비디아 GPU 확보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해 왔습니다. 이 협력이 2030년 안에 성사된다면, GPU 20만 장을 확보하겠다고 했던 이재명 정부의 목표는 초과 달성을 이루게 됩니다.
- 삼성전자, SK그룹, 현대차그룹, 네이버클라우드는 주로 ‘피지컬 AI’라고 불리는 AI 기반 로보틱스 기술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GPU를 활용할 예정입니다. 또한 정부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사업, 국가AI컴퓨팅센터 구축에 GPU 5만 장을 활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중 ’국가 AI컴퓨팅센터’에만도 GPU 5만 장이 그대로 들어갑니다. (국가 AI컴퓨팅센터 사업은 2차례 유찰을 거치며 공공성이 약화되자 지난 10월 삼성SDS가 네이버, 카카오, KT 등과 함께 단독 입찰한 상태입니다.)
- 이번 엔비디아 GPU 확보를 두고 우려 또한 나오고 있습니다. 산업계는 산업 생태계의 엔비디아 종속과 국내 반도체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언론인 손재권 대표는 모든 GPU를 대기업이 독식했다는 점과, 전력 인프라 한계를 지적하였습니다. 또 국가AI전략위원회 사회분과를 맡은 이원태 교수는 정부에 ‘스타트업, 중소기업, 공익적 AI 연구·개발 부문에도 자원을 분산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엔비디아의 우선 공급 약속이 얼마나 잘 지켜질지 두고 볼 일이기도 합니다. 엔비디아는 여전히 중국 시장에 고성능 GPU를 수출하고 싶어하는데, 동시에 미국은 이를 제한하면서까지 우위를 지키려 하고, 이 외에도 수많은 나라가 GPU를 확보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젠슨 황 회장은 한국 내 GPU 도입을 “가능한 한 빨리 진행”하겠다고 표현했지만, 동시에 도입 시기가 국내 “부지, 전력 등 여러 조건”에 달려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이번 거래는 결코 공짜가 아닙니다. 26만 장의 최신 GPU는 시장 거래 가격만 해도 10조 원 이상에 달합니다. 운용에 필요한 전력은 중소도시 1개 규모입니다. 그런데 21만 장의 GPU는 대기업이 거래하기로 하였고, 정부에는 5만 장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미 GPU 5만 장이 필요한 AI컴퓨팅센터에 민간지분 70%를 약속했다는 걸 생각하면, 그 5만 장도 많은 부분 기업이 운영을 주도하게 됩니다. 정부가 GPU 20만 장 확보를 공언하며 약속했던 목표는 ‘소버린 AI 구축’, ‘다양한 산업 전반에 AI 도입’, ‘AI 인재 양성’ 등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협력 발표에서 이 국정 목표마저도 표면에 드러나지 않았고, 보이는 것은 대기업의 이름 뿐이었습니다. 겨우 4개 기업의 ‘피지컬 AI’ 팩토리 구축이 어떻게 정부의 약속을 이루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지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일각에서는 국내 경제가 ‘AI 낙수효과’의 혜택을 볼 수 있고, 코스피(한국종합주가지수)는 계속 상승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AI 산업 투자의 효과가 대기업에서 끝난다면 이는 ‘낙수효과’라 할 수 없습니다. AI 밸류체인(부가가치 사슬)으로 묶인 기업들의 ‘제 논에 물대기’입니다. AI 투자 열풍으로 인해 주가는 상승하지만 경제 성장은 더뎌지고 있다는 경고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엔비디아발 AI 세계질서에 10조 원+α의 거래를 맺고 탑승했습니다. 가속에 몸을 맡기면서, 그 동력원의 소유권은 겨우 4개의 대기업과 정부가 나눠가졌습니다. 그 종착지에서 AI 낙수효과도, ‘AI 기본사회’도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대기업끼리의 나눠먹기로 경제가 병들고 전기, 수도 등 기본 서비스 요금은 상승하는 심각한 불평등과 빈곤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목적 없이 가속하는 AI 투자 경쟁은 AI ‘치킨게임’(파멸을 향해 돌진하는 담력시험)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부는 GPU 26만 장이라는 양적 성과에 미리부터 자아도취할 게 아니라, 어떻게 긍정적인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낼 것인지 국민들 앞에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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