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행동계획안 의견제출 모임 세 번 한 후기

연말연시를 국가에 바쳤습니다

AI행동계획안 의견제출 모임 세 번 한 후기
장영혜중공업, 〈우아〉 (2025 타이틀 매치 《장영혜중공업 vs. 홍진훤: 중간 지대는 없다》)

AI행동계획안 의견제출 모임 세 번 한 후기

by 🤖아침

저는 어쩌다 보니 「대한민국 인공지능 행동계획(안)」에 대한 의견을 제출하는 서로 다른 모임 세 건에 참여했어요. 덕분에 자유시간 대부분을 행동계획안 의견 작성에 바치는, 아주 애국적인 연말연시를 보냈답니다. 각 모임마다 달랐던 성격, 진행 방식, 결과물을 되돌아 보고 이번 의견 수렴 절차의 아쉬운 점을 생각해 봤습니다.

참고로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에서 요구한 의견 제출 형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o 의견 제출내용
- 액션플랜 번호 : 00번
- 수정 내용 :
- 제안 이유 :

세 개의 모임

모임 1: ‘AI 윤리 북클럽’ 참여자 모임 (6명 내외) / 참여자 개인 / 토론 모임 1회 진행 개인별 작성. 모임 2: 활동가, 법조인, 언론인, 연구자 등으로 구성된 모임 (9명) / 모임 (개인 연명) / 개별 초고 작성 후 지정 편집자가 취합 토론/편집 모임 2회. 모임 3: 비영리단체 ‘슈퍼스톰’ 회원 소모임 (3명) / 단체 / 토론/작업 세션(2시간) 6회 진행 공동 문서로 실시간 작업

1️⃣ [모임 1]은 AI 윤리 레터의 자매 커뮤니티인 ‘AI 윤리 북클럽’ 참여자 중 관심 있는 사람들로 구성됐습니다.

목표 결과물은 "각자 개인으로 1개 정책과제(액션플랜)에 관해 의견서 제출하는 것"으로 설정했습니다(총 98개 정책과제 중 선택. 그 너머의 작업은 자유). 진행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자료 검토 (각자) → 토론 및 상호 피드백 (온라인 모임) → 의견서 초안 공유 및 상호 피드백 (비동기 채팅) → 제출 (각자)

모임 1은 제가 제안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참여자 대부분이 의견서를 제출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래에서 얘기해 볼게요.

2️⃣ [모임 2]는 어느 변호사 선생님 중심으로 활동가, 법조인, 언론인, 연구자 등이 구성한 모임입니다. 의견서 제출을 위해 만들어진 모임은 아니고, AI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 개선에 관심 있는 공부 모임 정도인데요. 모임 성격과 의견서 제출 작업의 의의가 잘 맞아 작업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는 개개인의 의견을 하나의 의견서로 취합해 제출했습니다.

  • 각자 관심영역에서 행동계획에 대한 의견을 작성, 공유 → 개별 의견 편집/취합 및 조율 → 최종안 제출
  • 개별 제안에 더해 [총론 정리]와 [전체 취합 및 편집]을 구성원 일부에게 역할로 배정

법조인/활동가 등 법/정책 문서를 많이 다뤄본 구성원 직업 특성 탓인지 문서 작업의 속도와 양이 굉장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정책제안 작업을 해본 적이 거의 없는데, 경험 많은 분들이 어떻게 작업하는지 엿볼 수 있었어요.

의견서 읽어 보기: https://docs.google.com/document/d/1Ez9YhiB2PBqvHXiDY6xnW51H8fmPCFzw9tC3MqLgMfQ

3️⃣ [모임 3]은 비영리단체 ‘슈퍼스톰’ 회원 대상 소모임 모집에 응답한 사람들로 구성됐습니다. 여기서도 하나의 의견서를 취합해 제출했고, “연말에 약속 없는 관계 파탄자들의 힘을 정부에게 보여주기 너무 좋은 기회”라는 모집 메일 문구에서 느껴지듯이 조금 더 가벼운/유머러스한 느낌으로 작업했습니다.

  • 첫 모임에서 각자 투입 가능 시간, 활용 가능 능력, 기대 공유 → 작업 시간 설정 (작업 시간 외에는 작업하지 않기로)
  • 구글 드라이브에 행동계획안 PDF 올려놓고 공동으로 댓글 달며 읽기
  • 문제의식 공유 → 의견서 구조화 → 수정사항/대안 리서치 → 최종 의견서 취합 (패치워크)

나머지 모임들보다 상대적으로 소박한 구성이었는데 협업이 잘 이루어져서 괜찮은 문서를 만든 것 같습니다.

의견서 읽어 보기: https://bit.ly/ai-superstorm

혼자 짧게 쓰기: 오히려 쉽지 않다

제가 주도한 [모임 1]과 나머지 두 모임의 큰 차이점은 의견 제출 단위와 방식(개인 제출 vs 공동 작업)이었어요. 모임 1의 목표를 ‘개인 차원에서 의견 1개 제출하기’로 잡은 이유는 작업 규모(scope)를 최대한 줄여서 각자 실행에 옮기기 최대한 쉽게끔 하려는 의도였는데요. 그러나 토론 모임을 함께 한 대부분의 참여자가 의견 제출을 하지 못했습니다.

작업 방식의 차이가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모임 1 참여자 중 일부는 ‘AI 정책의 대전제/원칙에 대한 논의 없이 개별 액션플랜에 대해 수정제안하는 것’의 어려움을 이야기했습니다. 의견 제출 양식은 특정 항목에 관해 이야기하게끔 제시되어 있는데요. 각론에 앞서 방향성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꼈는데, 방향성도 함께 제시하는 건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생략하자니 제안을 정리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작업 규모를 최소화하고자 했던 설계(의견 1개만 빠르게 쓰자)가, 오히려 난이도를 끌어올린 것 (의견 1개만 분리해서 쓰기 어려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실제로 모임 2, 3에서는 전체적 방향성을 비평하는 총론을 별도로 공동 작업했고, 개별 액션플랜에서 다루지 못하는 이야기를 총론에 많이 녹였습니다.

행동계획안 의견수렴 절차 유감

사실 정책에 대한 의견이나 대안 제시 자체가 난이도 있는 일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정책의 언어를 읽고, 다른 방향이나 시도는 어떤 것이 있는지 조사하고, 자신의 감상과 생각을 언어화하는 일 어느 단계도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의견서를 최종 완성 제출하지 못했다고 모임 1이 나머지 모임보다 의미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우선 정책문서를 읽었으니까요.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지만, 있는지도 모르고 넘어가기 쉬운 문서를 읽는 행위 자체가 시민으로서 중요한 실천입니다. 그 과정에서 한 생각들, 심지어 막막한 감각까지도 중요한 자산이라고 봅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바쁜 시간 쪼개서 문서를 읽고 동료들과 토론까지 한 시민이 의견서를 제출하지 못했다는 것은 (모임 운영 방식이나 개인의 영역을 넘어서) 의견 수렴 절차가 친절하지 않게 설계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고요.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웹사이트 갈무리
  • 우선 190쪽에 달하는 정책문서에 대한 의견 수렴을 12/16부터 1/4까지 휴일 포함 20일 동안 받는 것은 너무 촉박합니다.
  • 의견 제출 양식도 개별 액션플랜 번호를 지정해서 수정사항을 제안하는 형태뿐만 아니라, 신규 항목 제안이나 전체적인 방향성에 대한 코멘트 등을 보다 자유롭게 제안할 수 있도록 했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번에도 그렇게 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지만, 예시를 주는 것과 주지 않는 것은 참여자 입장에서 차이가 있으니까요.)
  • 보낸 의견이 어떻게 처리되는지가 불분명한 점도 아쉽습니다. 의견 수렴 게시물에는 “최종본 마련을 위한 참고 자료로 활용될 예정으로, 관계 부처 등과 협의하여 검토할 예정”이라고만 적혀 있는데요. 누가 검토하는지, 들어온 의견을 공개하는지, 검토 후 논의 절차는 어떻게 되는지 등을 파악할 수 없어, 솔직히 의견 제출을 하면서도 어떤 기대를 가져야 할지 애매했습니다.
  • 이메일로 의견을 취합하는 것이 최선이었나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메일 반송 등의 오류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문구를 읽고, ‘그럼 오류가 나면 어떻게 하란 말이지’ 싶기도 했고요.

이번 의견수렴 기간은 종료되었지만 앞으로 수정 발표될 행동계획과 개별 부처가 구체화할 정책들에도 꾸준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관심 있는 시민들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문턱을 지금보다 낮추는 방식의 의견 수렴 절차를 보장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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